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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나에게로 왔다6

취하라 - 샤를 보들레르 - 항상 취하라 그것보다 우리에게 더 절실한 것은 없다. 시간의 끔찍한 중압이 네 어깨를 짓누르면서 너를 이 지상으로 궤멸시키는 것을 느끼지 않으려거든 끊임없이 취하라 무엇으로 취할 것인가 술로, 시로, 사랑으로, 구름으로, 덕으로 네가 원하는 어떤 것이든 좋다 다만 끊임없이 취하라 그러다가 궁전의 계단에서나 도랑의 푸른 물 위에서나 당신만의 음침한 고독 속에서 당신이 깨어나 이미 취기가 덜하거나 가셨거든 물어보라 바람에게, 물결에게, 별에게, 새에게, 시계에게 지나가는 모든 것에게, 굴러가는 모든 것에게 노래하는 모든 것에게, 말하는 모든 것에게 물어보라 그러면 바람이, 물결이, 별이, 새가 시계가 대답해 줄 것이다 취하라, 시간의 노예가 되지 않으려면 취하라, 항상 취해 있으라 술이건, 시건, 미덕이건 .. 2019. 5. 12.
속리산에서 - 나희덕 속리산에서 - 나희덕 - 가파른 비탈만이 순결한 싸움터라고 여겨 온 나에게 속리산은 순하디 순한 길을 열어 보였다 산다는 일은 더 높이 오르는 게 아니라 더 깊이 들어가는 것이라는 듯 평평한 길은 가도 가도 제자리 같았다 아직 높이에 대한 선망을 가진 나에게 세속을 벗어나도 세속의 습관은 남아 있는 나에게 산은 어깨를 낮추며 이렇게 속삭였다 산을 오르고 있지만 내가 넘는 건 정작 산이 아니라 산 속에 갇힌 시간일 거라고 오히려 산 아래서 밥을 끓여 먹고 살던 그 하루 하루가 더 가파른 고비였을 거라고 속리산은 단숨에 오를 수도 있는 높이를 길게 길게 늘여서 내 앞에 펼쳐 주었다 #나희덕 #속리산에서 2019. 5. 12.